살아가는 이야기들

옆 좌석에 앉은 여자

중묵 2011. 1. 21. 13:05

옆 좌석에 앉은 여자

 

커피 향내에 잠이 깨였다.

서울역에서 대구 갈 기차 좌석표를 보며 내 옆에 누가 앉을까 하는 생각은 젊었을 때나 지금이나 똑 같다.

창쪽 좌석이 나의 자리인데 나와 나이가  비슷한 여인이  앉아 있어 번호를 확인하고는

고맙다는 말을 기대하면서 바꾸어 앉았는데 반응이 없다.

" 커피 한잔 하실까요? " 라는 소리를 하는 것도,  듣는 것도 세상 살아오면서 지친터라 생각은 없지만

그래도 커피나 한 잔 먹을까 싶었지만  혼자 홀짝거릴 수 없어  눈을 감고 있다가 잠이 들었는데

이 여자는 품위를 과시하느라고 껌까지 씹으며 멋을 내고 있었던 것이다.

책도 펼쳐 놓고 있었는데  책장이 넘어가지 않으니 읽지 않는게 분명하다.

여자들은 손을 외롭지 않기 위해 책을 도구로 쓰는 것을 처음 알았다 .

핸드폰으로 이동로 중계를 하며 수다 떠는 모양은 옆자리에 남자는 허수아비로 보이나 보다. 

꼴볼견 진수를 보여 주고 있으면서 우아한척이나 말 것이지.

머리 빗질, 얼굴 분칠, 옷 치장, 꺽꺽 껌 씹는 입술, 펼쳐 놓은 책을 곁눈으로 훔쳐 본 죄로

불편한 자리가 되어버려  대구에 도착할 때까지 눈을 감고 있을 수 밖에 없었다.

 

 

찢긴 커피 봉지 같은 여자야

 

혼자 마시는 커피로 쓸쓸하지도 않더냐

 

커피 한 잔 만으로도

 

가슴을 까맣게 그을러 몇 시간을 향내음으로

 

솔솔 피울 수 있을텐데 

 

손톱에 까만 반달 그려 힘껏 멋은 부렸지만

 

창쪽 좌석에 먼저 앉은  여자는

 

구겨서 휴지통에 던진 종이컵이였다

 

나 또한  종아컵 남자가 되어 

 

천정에 매달린 티브이 통에 던져졌다.

 

 

친구란 이런 위치에서 커피를 함께 마시는 사람일 것이며,

친구지만 친구가 아닌 사람은  여자가 옆자리에 앉았지만 여자로 보이지 않는 그런 여자와 같은 것이 아닐까?

나를 기억하고 찾아와  잠시 내 곁에 머물렀던 사람들에게 나는 어떻게 보였을까?

인연이라는 가면을 하고 행세한 내가 아니었을까? 

옆 좌석에 앉아 청승을  떤 그런 여자가  내가 아니었을까? 

서울이 춥다고 해서 몸 단장을 단단히 하고 갔는데  한달음에 달려와 고향 이야기를 나누었던 000.

점심 대접을 푸짐하게 해 준 000, 그들의 따뜻한 사랑이 있었기에 서울은 춥지 않았다.

나의 곁에 앉았던 그런 여자와 같은 나를 팽개치지 않고  인연을 따뜻하도록 데워 준 그들에게 진심으로

감사드리며  맛과 향이 좋은 커피 한잔을 권해 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