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에서 10번째 안에 들어 가는 섬 중에 유일하게 백령도를 가 보지 못하여 여행사를 통해서 2박 3일동안 백령도 및 대청도를 여행하게 되었다.
백령도는 14번째로 큰 섬이었으나 간척지 매립으로 8번째 큰 섬이 되었으며, 인구는 군인 반과 주민 반으로 시민(인천광역시)5,700 여명이며,
농업과 상업에 주로 종사하고 어업은 10%에 불과하다.
백령도는 땅이 넓어 1년 농사 지어서 3년을 먹을 수 있다한다.
백령도에 없는 것은 서로 다 아는 사람이라 '도둑이 없다'보니 대문이 없으며, 집 구조는 현관문을 열면 거실이니 마루가 없고 아파트도 없다.
사고가 나지 않으니 신호등이 없고, 해병대가 다 잡아 버려서 귀신이 없다.
백령도에 가장 긴 백령대교는 무려(?) 30 m이다.
전기는 화력으로 발전하고, 지하수를 퍼 올려서 식수를 한다.
백령도는 홍어가 많이 잡히나 백령도 홍어는 없는데 육지로 가져가면 그쪽 홍어가 되는 것이다.
양식을 하지 않는다,고로 바다에 그물망이 없다.
백령도에는 잡히지 않는 횟감이 있다. 육지 사람 입맛에 맞도록 육지에서 수입한다.
백령도에는 처녀 총각이 귀하다, 상급학교가 있지만 초등학교를 졸업하면 육지로 유학을 보내며,
그래도 대학은 경로대학과 해병대로 두개나 있다.
관광인을 상대로 하나 사람들은 대체로 친절하였다.
정부 지원으로 주택 개량 사업을 하여 집들이 새집 같았고, 관광객을 위한 횟집, 팬션 등이 개발되고 있었다.
옛집을 보지 못했고 무속신앙이 번성하련만 그런 흔적을 보지 못했다.
거리는 깨끚하고 육지와 같이 모든 상호들이 다 있었고, 택시는 사륜 구동차다.
이외로 군인들이 많이 보이지 않았으나 저녁이 되니 식당에는 간부들이 보이고 해변에는 실탄을 휴대한 군인들이 나타났다.
태풍 때문에 마음 조이며 하루에도 몇번씩 기상예보를 열어 보았는데, 기상대는 기상예보를 않고 실황중계를 하는건지 몇번이나 바뀌면서도 못 알아 맞추어서,
대청도는 비로 시작해서 비로 끝나버렸고 복귀날 오후는 개인다더니만 그건 알아 맞추었다.
백령도는 인천에서 서북쪽으로 228 km로 위치해 있고, 북한의 황해도 장연과는 17 km거리이다.
백령도(白翎島)는 삼국유사(三國遺事), 고려사(高麗史),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
등에 의하면 '곡도(鵠島)'라고 불렸으며, 고구려에 속한 땅이었고, 고려 태조가 '백령(白翎)'으로 개칭하였다고 한다.
고니를 뜻하는 '곡(鵠)'자가 나타내듯이 이 섬은 온갖 철새들의 천국이었고, 특히 백조라고도
하는 이 새가 많았는데 바다에 배를 띄우고, 멀리 나가서 보면, 섬 전체가 모두 하얀 날개로 덮힌
듯 보일만큼 새들의 무리가 장관이었다고 하며, 그래서 ‘白(흰 백)翎(날개 령)島(섬 도)’라 불리게 되었다고 한다.
그런데 백로는 한마리도 보지 못했다.
해방 후 38선이 남북을 가른 후, 백령도는 경기도 옹진군 백령면에 속해 있다가, 1995년도에 인천광역시에 편입되었다.
대구에서 03시에 출발아여 08시30분 배를 탔으며 운임은 73,000원이고 4시간이 소요되었다.
파도가 없어 거을 같았으나 복귀날은 너무나 파도가 심해서 열에 다섯명은 배멀미 난장판으로 그것도 구경이었다.
그러나 왜 왔던가라며 궁시렁 대는 소리는 듣지 못했다.
사곳천연비행장 (천연기념물 391호)
세계에서 이태리와 이곳 두곳 뿐이며 물이 빠지면 세면트처럼 모래가 굳어서 차가 다니고 비행기가 이착륙 할 수 있다한다.
뒷날 아침에 보니 밀물로 백사장이 사라지고 없었다.
용기 원산 자연동굴
자연현상으로 생긴 굴로 물이 차면 바위는 섬이 된다고한다.
주변이 기암괴석들로 아름다웠다.
남들은 구경하기 바쁘고 나는 사진 찍기 바쁘니 다행스럽게 스마트폰을 맡기는 사람이 별로 없었다.
간단한 가방이 아닌 무거운 배낭이니 찍어 주라는 소리를 못했을까?
10m도 안되는 뚥린 두갈래 굴로 한쪽은 바다쪽으로 구멍이 나 있다.
심청각
가는 곳마다 사진을 십장씩 찍어서 제목마다 글과 사진을 올려야 하는데 생략하고,
이곳에는 심청 전사관, 전차, 155미리 곡사포, 인당수가가 보이는 바다. 북한 등을 찍었다.
숙소에서 1Km이기에 밤에 올라 가려고 했더니 최전방이다.
연화마을도 있는데 지금은 연을 재배하지 않아 연을 보지를 못했다.
심청각에만은 연꽃 연못이나 화분이라도 있으련만 실내 전시실에 포토 조형 연꽃만 있었다
심청이가 팔려가서 물에 빠져 죽은 인당수
천암함 46용사 위령탑
일행이 찍어 준 사진이다
전사 46명 고인들에게 뭐라고 할말이 없다.
저승에서 세월호 학생들을 만나 몸값으로 냉대 받지않기를 빌며,
국화꽃으로 헌화와 묵념을 하고 같이 온 사람들이 보거나 말거나 거수경례를 하였다.
불꽃이 워낙 작아서 유리관 속에 조거맣게 보인다
해안 철조망
해안은 철조망이 설치돼 있는데 여기는 철거 시키지 않는가 보다.
숨은듯이 보이지 않는듯하나 별장 같고 휴양지 같은 군 시설들이 산에 깔려 있고, 방어진지들은 자연스럽게 주민과 공존하고 있었다.
사진촬영 무단침입 등 경고 팻말이 곳곳에 붙어 있다.
관광버스를 타고 다니니 갈 이유가 없다. 다련장 대대장을 했기에 반가웠다.
두무진
마치 장군들이 머리를 맞대고 회의를 하는것 같다고 붙여진 두무진은 작은 금강산, 서해의 해금강이라고도한다.
해안을 따라 4Km로 50~100m 높이의 규암절벽들이 늘어서 있으며, 자연의 위풍당당함에 보잘것 없는 나를 발견할 수 있었고
너무나 신비롭고 아름다웠다.
백령도의 백미인 이곳을 관광하기 위해서 간다고 해도 거짓이 아닐 것이다.
명승지 제 8호로 광해군은 "늙은신의 마지막 작품이라고 경탄하였다고 한다.
배로 1시간을 유람한 후에 걸어서 샅샅이 구경하였다.
한끼는 자비 부담 3만원으로 돈이 아까운 것이 아니고 가이드와 협조하여 기다렸는데 일몰은 형성 되지 않았다.
냉면, 감자탕이 좋다는데 찾아도 없어 7,000원짜리 된장찌게로 저녁을 때웠다.
두무진은 백령도 최고의 관광장소로 선대암, 형제바위, 코끼리바위, 병풍바위, 올빼미 바위, 잠수함 바위등이 사열을 하고
있으며, 보는 위치마다 다르게 자랑을 하니, 물이 빠졌을 때라 일몰은 못 찍었지만 구석구석 돌아다니며 가슴에 담고 사진으로도 100 여장 이상 담았다.
모두 올릴 수 없어 아쉽다.
코끼리 바위
형제바위
백령도 관광안내서를 구하지 못하여 자세하게 살펴보지 못했다.
가이드는 차를 지키고 몇 분 줄 테니까 다녀 오세요가 끝이다.
그래서 바위들 이름을 모르겠다.
선대암
잠수함 바위
유람선에서 본 우리의 절벽동굴 진지
백령도 점박이 물범(보호대상 해양생물)
딱 한마리 보았는데 망원렌즈로 당겨서 보니 고기를 잡았다 .
유람선에 몇 백명이 탄 사람중에 고기 잡은 것은 나만 보았으니 거짓말장이가 되었다.
멋지게 사진을 찍을 수 있도록 갈매기가 날았으면 좋으련만 사진속에 날아들지 않았다.
두무진 유람선에서 바라보는 해안
하루 일정이 끝나고 2인 1실 팬션에서 하룻밤을 보냈다.
12시가 지난 줄 알았는데 9시다.
밖에 나가보니 여기도 대한민국이다.
사자 바위
마음이 고우면 사자로 보이고 마음이 나쁘면 이구아나로 보인다는데 아무리 보아도 이구아나다.
일행이 찍은 몰카
통일 기원비
백령도 담수호
해당화
해당화가 이외로 길가에 많았는데 꽃피는 철에 오면 아름답겠다.
백령도 사람들은 꽃을 좋아하지 않는지 집 주위에 꽃이나 화분이 많이 보이지 않았다.
중화동 교회
우리나라에서 두번째로 오래된 교회(1898년)이며 , 백령도는 기독교 신자가 많다.
교회는 11개가 있으나 절은 하나도 없고 군부대에만 있다고 한다.
무궁화(천연기념물 521호)
교회앞에 있는 이 무궁하는 90~100년된 나무로 무궁화 수명은 40~50년이라고 한다.
작년엔 많이 피었다고 하는데 너무 늙었는지 딱 한송이가 피어 있었다.
남들은 앞에서만 보니 못 보았고, 한바퀴 둘러보며 사진을 찍기에 보이는 것이다.
용트림 바위
용이 하늘로 승천하는 모습이다
콩돌 해안가(천년기념물 392호)
CCTV가 감시를 하고 있어 콩돌을 가져 나올 수 없다.
하지만 기념으로 한주먹 가져 왔어야 했는데 깜빡 한건지? CCTV에 겁이 났는지?? 모범국민인지는???
콩만한 돌들이 파도에 부딪쳐 사르르륵 거리는 소리는 지금도 잊을 수 없다.
인증삿 사진만 찍으려고 하지 말고 파도에 부딪쳐 들리는 콩돌소리를 꼭 들어 보시길....
주변의 암석에서 떨어져 나온 돌들이 파도에 마모되어 백색, 갈색, 적갈색, 회색, 청색 등 다양한 색을 띄고 있는데
이는 광물질을 포함하고 있기 때문이란다.
"하나 둘에 뛰세요" 갑자기 뛰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나도 기념사진을 찍었다.
두무진이나 콩돌해변은 군부대 해안초소나 경계철조망이 설치돼 있으나 묘한 조화를 이루었고,
자연그대로의 정취에 취해 잡념을 버리고서 신비로운 경험을 하였다.
녹색명소 간척지 전망대에서
좌측은 담수호 우측은 바다이며, 백령도에서 하나 뿐인 30m백령대교가 여기에 있다.
이 때부터 비가 오기 시작해서 배 탈때까지 내렸다.
창바위
전망대에서 내려다 보이는데 일행들 거이가 보지 못했음
부용이 길가에 피어 있었다.
앞에 조금밖에 보이지 않는 논은 늪과 자갈밭이었으나 경지정리로 큰 벌판이 되었다고 한다.
오전 관광이 끝나고 점심 식사 후에 배로 15분 거리에 있는 대청도로 출발하였다.
육지는 물난리인데 하늘이 도와주어 백령도는 비를 덜 맞으면서 관광을 하였다.
백령도의 날씨에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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